바라보는 풍경

김현주 개인전: Wetland 

안소연 미술비평가

 

김현주의 <Wetland>(2021) 연작은 거대한 연못 위로 식물이 무성하게 자란 풍경을 보여준다.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의 표면을 잠식해 오듯 저 먼 데서부터 피어 오르는 식물의 형태는 그림 안에서 하나의 공간을 이룬다. 깊은 공간의 원근감을 단축법으로 풀어낸 것 같이, <Wetland> 연작 대부분은 화면 앞부분을 시선에 대하여 압박해 다가오듯 크게 확대하였고 납작하게 단축된 화면 너머의 풍경을 금세 대비시켜 놓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큰 풍경은 나의 눈 앞에까지 와 있는 것 같지만 공간의 시차(視差)는 크게 압축한 것처럼 얕다. 그것은 <Wetland> 연작이 그림으로서 일련의 공간을 경험시킨다는 것인데, 그것은 또한 회화적 화면 자체에 대한 신체 경험을 강조하는 태도처럼 보인다.

   <Wetland 13>(2021)은 그림의 폭이 2m가 넘고 세로도 2m 가까이 되는 큰 화면에 초록색 습지 풍경을 담고 있다. 이 큰 풍경과 대비되는 것이 <Wetland 04>(2021)와 <Wetland 05>(2021)인데, 각각 폭이 45cm이며 세로는 53cm에 불과하다. 정황 상 큰 풍경과 이 작은 풍경 사이에는 <Wetland 01>(2021)과 <Wetland 02>(2021)와 <Wetland 03>(2021)가 자리하고 있으며, 각각 가로 112cm와 세로 145cm로 삼면화 구조를 가지고 나란히 놓인다. 그림의 스케일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가 회화의 대상으로 선택한 풍경의 형태를 비롯해 여러 조형적 특징이나 구도 및 시점에서 별 다른 차이는 없다. 그렇다면, 전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결국 이 풍경 그림의 나란한 설치를 통해 우리가 알아차리는 것은 각각의 풍경 그림이 상대적으로 드러내는 크기의 문제일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화면 앞에 서서 붓을 다룬 작가의 신체와 그 몸의 제스처를 매개한 그림의 크기다.

   김현주는 최근에 풍경 그림을 그리면서 몸을 많이 쓴다고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주로 긴 붓을 사용해 그림과 특유의 거리감을 경험하면서 회화의 화면 바깥에 서서 그림을 그린다는 스스로의 자각을 확인해 왔다. 그의 말대로, 이전의 작업은 자신의 내밀한 꿈과 무의식을 내용으로 하면서 일정한 거리감을 만들어 놓고 그 이상 진입하지 못하는 대상과의 불확실성을 드러냈다. 최근의 풍경 그림에서는 그가 그림과 자신의 몸 사이에 심리적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것처럼 제한해 온 수수께끼 같은 거리감을 (어느 정도) 해제하고, 그림과 몸 사이의 간극을 훨씬 유연하게 실제적으로 경험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참조하는 대상이 현실에서 마주한 실제 풍경으로 옮겨오면서, 그 대상/풍경과 관계 맺는 몸의 경험이 작업의 대상/회화와 마주한 신체적인 태도로 옮겨와 동기화된 탓이 컸을 테다.

   과거에 그가 “밤마다 되풀이되는 꿈의 한 장면”에 대한 기억과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어떤 환영처럼 떠오르는 잠재적인 형상들”을 작업에 옮겼을 때도 그는 물로 채워진 임의의 공간과 시들어가는 꽃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흐드러지게 그렸더랬다. 그 그림들은 대개 붉은 색 물감 자국이 가득한 인상을 남겼고 전체적으로는 매우 추상적이며 어둡기까지 했다. 그에 대해서 나는 “마치 서사 없는 이미지들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김현주의 회화는 꿈에 투영된 현실의 분열적인 단편들처럼 이중적인 환영들로 가득 차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안소연, “회화 너머의 환영”(가창스튜디오 비평문, 2018)] 최근의 풍경 그림에서는, 그가 중국 여행 중에 경험했던 습지 풍경을 시작으로 레지던시와 한시적인 이동 및 이주의 경험에서 목격한 자연 풍경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의 예전 그림을 기억한다면, 여전히 그가 물과 식물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그리고 있다는 것에서 어떤 닮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에 대해, 꿈의 장면을 기억하며 반복했을 때의 그림에 대한 정서가 강박적이었다면, 자연 풍경을 경험하며 대상을 마주 놓고 그린 녹색 풍경 그림은 강박적이기 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과 그때의 몸의 제스처를 집중해서 신중히 살피게 한다. 바라보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해서 말이다.

   그림의 크고 작은 변화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은 나와의 대화에서, 그는 “보는 것”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리는 방법은 크게 달라진 게 없지만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거기서 본 것들을 있는 그대로 그리게 되었다는 김현주는, 그가 본 것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려 했다는 속내를 말해줬다. 그러다 보니 풍경과 나 사이의 실재하는 “거리감”을 끊임없이 조율해가는 몸의 제스처들이 많아졌을 테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전통적인 풍경화처럼 극단적인 소실점을 그려가며 삼차원적 공간감을 재현하려 애썼을 리는 없다. 그는 꿈과 무의식의 모호한 장면들을 추상적이거나 표현적인 감각으로 시각화 했던 것과의 연속에서, 대상에 대한 추상적인 경험을 여전히 중요하게 남겨 놓았다. “비현실적이고 분열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주체의 근원적 상실의 시나리오를 드러내려 했던 그때의 그림을 떠올려 본다면, 그가 지금 직접 “본 것”을 그리는 회화적 시도는 마찬가지로 대상에 대한 “근원적인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세잔(Paul Cézanne)의 회화, 특히 그의 풍경화에 대한 현상학적 논의에서 ‘전대상적(preobjective) 경험’이라고 부르는 지각 과정과 비슷하다. 김현주는 세잔이 익숙한 현실의 풍경에 대해 “보는 방식”을 전환하여 자신의 체험된 시각으로 세계를 새롭게 의식하고자 했던 회화적 성취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작업의 변화에 대한 당위를 증명해 보이게 됐다. 그가 이러한 회화사의 내막을 직접 말하거나 자신과 참조적으로 연결시켜 놓지는 않았으나, 풍경을 경험한 대로 그리고자 하는 시도는 회화에 대한 “세잔의 회의”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는 풍경 그림에서 “깊이감”이 생기도록 실험을 해 본 거라 말했는데, 그것은 세잔에게서 볼 수 있었던 명료하고 단일한 형태의 윤곽에서 벗어나 “회화에서 시각의 깊이를 회복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나게 한다.[전영백, 『세잔의 사과』(한길아트, 2008) 참고] 더군다나, 그가 화면의 답답함을 호소하며 수채화처럼 간결하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대화에서의 마지막 말이 내겐 의미 있게 들렸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내가 김현주의 풍경 그림에서 주목해 보는 것은 “크기”의 문제다. 그는 풍경의 스케일을 그대로 큰 화폭에 담기도 하고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기도 하고 동일한 것을 반복하여 그 내부의 미묘한 차이를 큰 화면에 담아내는 (비효율적인) 시도 또한 감행했다. 동시에 그는 그가 바라보는 풍경을 자신의 몸 바로 앞에까지 바짝 당겨와 그것과 대면하고 있는 시각적 깊이를 어떻게든 현존하는 감각의 실체로 나타내려 했던 것 같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큰 풍경 그림 옆에 나란히 놓인 <Wetland 04>와 <Wetland 05>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김현주는 그가 말했던 것처럼, 저 크고 작은 풍경 그림들 앞에서 끊임없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스스로 그 대상 앞에서 체험했던 감각적인 지각에 대해 살피려 했던 것 같다.

   체험된 시각에 의한 세잔의 풍경화가 그토록 불확실한 윤곽과 추상에 가까울 정도로 흔들리는 면을 보여주고 있는 까닭은, 그가 바라보는 대상이 “시각적인 것”과 “비시각적인 것” 사이에서 공존하며 경험되기 때문이었으며, 이는 김현주의 풍경 그림에서도, 아니 그 이전의 강박적인 꿈에 대한 기억을 표현하려 했던 그림에서도 지속되어 왔던 “추상적 감각”의 실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그가 체류했던 경북 의성의 인구 소멸 지역에서의 풍경 그림 <생송3리>(2021)는 역설적이게도 그 어떤 현실의 서사도 없이 산과 강과 하늘이 경계 없이 공존하고 있는 추상적인 세계로 그려져 있다.

Beholding Landscapes

Hyunju Kim’s Solo Exhibition: Wetland

 

Soyeon Ahn | Art Critic

 

At the center of Hyunju Kim's Wetland (2021) painting series is a view of a large lake surrounded by overgrown botanical life. Plants seem to extend beyond the visible edges of the shoreline, encroaching on the unknown depths of water to claim a space of their own. These paintings are characterized by an exaggerated foreground that generates a compact sense of perspective, with the background pulled tight in stark contrast to the rest of the composition. The effect is a dramatically compressed landscape that makes viewers feel as if they were seeing it first-hand, inviting a visceral and embodied experience of the landscape.

             Wetland 13 (2021) depicts a stretch of green wetland that spreads across a vast canvas of more than two meters in width and nearly the same height. At the other end of the spectrum, Wetland 04 and Wetland 05 (both 2021) measure a mere 45 cm by 53 cm. Between these extremes in scale are Wetland 01, Wetland 02, and Wetland 03 (all 2021), each of which extends 112 cm across and 145 cm high, collectively constituting a triptych. Aside from their conspicuous size differences, all the works in the series visualize landscapes with similar formative characteristics, compositions, and perspectives. As such, presenting these works side by side in an exhibition setting serves to emphasize the effects of different canvas sizes. This installation schematic encourages viewers to imagine the artist’s experience as she created these variably sized paintings.

             In a recent interview, Kim revealed that she finds the practice of landscape painting to be physically taxing. Prior to her Wetland series, she primarily used long paintbrushes, which allowed her to keep the canvas at arm’s length while making her conscious of the act of painting scenes beyond the picture plane. As Kim has noted, her early works conveyed a sense of uncertainty based on the impenetrable distance between painter and painting, even as she oriented her gaze toward her own hidden dreams and subconscious sensibilities. However, in her recent landscapes she seems to have at least partially transcended the puzzling variable of distance that sustained the psychological tension between her work and her own body, thus experiencing her works with far greater flexibility and physicality. One reason for this may be that the subjects of her paintings have shifted onto the actual landscapes that she encountered in real life, allowing her to translate her own experiences of witnessing these real sceneries into her artistic process and thereby adopting a new physical attitude toward her works.

             Kim’s earlier paintings, which recreated memories of “a recurring scene from her nightly dreams” and “phantasmagoric images that haunt the border between reality and dreams,” adopted a distinctly animalistic style whereby the artist rigorously painted an array of aqueous spaces and withering flowers. The majority of these paintings were dominated by the color red and reflected an abstract and generally dark aesthetic. I have noted elsewhere that Kim’s paintings of “endlessly repeating narrative-less images,” are filled with “two-faced phantoms like fragments of nature projected onto dreams” (Soyeon Ahn, “Phantasms Beyond Paintings,” critical commentary for the exhibition at Gachang Art Studio, 2018). Kim’s recent paintings, on the other hand, convey her impressions of the natural landscapes she has encountered, beginning with the wetlands she visited while traveling in China as well as the natural sceneries she experienced during her residency and migration. For those who remember her earlier works, it is clear that water and plants have endured as prominent motifs within her practice. Yet the green landscapes in her recent paintings lack a certain compulsion that used to permeate her repeated depictions of dreamlike scenes. These new landscapes encourage viewers to be mindful of her gaze as well as the gesture with which that gaze is transmitted; in other words, they remind us of what it means to behold something.

             In my conversation with her, Kim indeed confessed that what she sees has changed a lot. The way that she paints her subjects may have remained constant, but her recent travels introduced new sceneries and images for her to focus on. Kim's desire to fill up canvas after canvas with these landscapes has inevitably led to a readjustment of her physical movement and “sense of distance” with regard to her paintings. Of course, her desire to represent such images hasn’t resulted in recreating three-dimensional spaces with extreme vanishing points, as seen in conventional landscapes. Kim has a knack for expressing the abstract and ambiguous elements of dreams and her subconscious, 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abstract experience even when depicting things that one might actually see in real life. In this regard, it is instructive to recall that her past works sought to capture possible situations in which the self becomes fundamentally lost amid the backdrop of “a surreal space-time continuum.” Her practice of drawing the things she has seen likewise evokes “fundamental experiences.”

             Kim’s recent works evince similarities to the so-called “preobjective experience,” a favored keyword in phenomenological discussions of Paul Cézanne’s landscape paintings. Kim reminds us of Cézanne’s artistic approach toward renewing a familiar world by changing the way that we see it. Although Kim has never explicitly mentioned this art historical reference in interviews—let alone consciously juxtaposed her works with those of Cézanne—her earnest attempt to paint landscapes as she experiences them resonates with “Cézanne’s skepticism.” In her recent works, Kim experiments with instilling a certain sense of depth that is reminiscent of Cézanne’s attempts to “restore a depth of perspective to paintings” above and beyond the clearly defined outlines of depicted objects (Chun Young Paik, Cézanne’s Apples, Hangil Art, 2008). Kim also confesses to feeling constrained by the canvas and seeking ways to depict images more simply, as one might with watercolor.

             Size still matters in Kim’s recent paintings. She keeps revisiting the same landscape using canvases of vastly different sizes and formats, seeking (rather inefficiently) to reveal subtleties in her depictions through such size differences. This newfound obsession with canvas dimensions seems to stem from a desire to conjure the visual depth of the landscapes that she physically experienced by bringing the subjects of her works as close as possible to the viewer's eye. This is most apparent in Wetland 04 and Wetland 05, which are placed alongside a gigantic panoramic canvas. Kim appears to have repeatedly entered and exited these landscapes of differing sizes while revisiting and examining her experiences in the actual wetland.

             Cézanne’s landscapes operate as models of experienced perspectives and are characterized by ambiguous outlines and highly abstract planes, reflecting his experience of objects in both their “visual” and “nonvisual” forms. A similarly ambiguous coexistence of what can and cannot be seen pervades Kim’s abstractions and infuses both her recent landscape portraits as well as her earlier paintings of dreams. Saengsong 3-ri (2021), a landscape that visualizing her recent stay in the barren rural town of Uiseong, South Korea, thus reveals an abstract world in which mountains, river, and sky coexist in a blur devoid of any realistic narratives.

내면풍경으로서 꽃밭과 표현주의적 사고

 

김남수(평론가)

 

 

김현주 작가는 식물, 그 중에서도 꽃식물을 주로 그린다. 꽃들이 피어 있는 광경은 늪지나 어두운 수풀처럼 다소 음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꽃들끼리의 관계는 굉장히 카오스적이다. 그렇다고 흐드러지게 피어서 참신한 생명들의 질거운 웃음판 같은 그런 광경은 아니다. 흐드러지게 피었으나 그 넘쳐나는 꽃들의 곡선들은 우묵하기도 하고 서로 집단으로서의 울울한 느낌 쪽에 가깝다. 어쩌면 이러한 꽃들의 다발진 영역에서 작가가 고민하는 어떤 한계 지점의 확인과 함께 그 한계 너머로 나아가는 잠재력이 깃들어 있는지 모른다.

확실히 김현주 작가의 꽃밭 광경은 관념적인 데가 있다. 상이한 시간, 날씨, 조도와 음영에 따른 자연의 빛, 그리고 특정한 장소 같은 단서들이 없으며, 그저 꽃들이 흐드러지다 못해 휘몰이하는 코스모스 우주처럼 보일 뿐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 꽃들의 구체적인 형상들은 모두 뭉개져 버리고 그저 색채들의 강렬한 혼합에서 나오는 카오스 우주처럼 나타난다. 형상들이 윤곽을 잃고 서로 색채끼리의 화학적 합창 속에서 선율적 풍경으로 서서히 바뀐다고 할까. 굉장히 표현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어떤 특정한 감성에 애착을 갖는 형태의 작업이 반복되는 경향까지 숨길 수는 없다.

작가 스스로도 그 선들과 색채 그리고 형상들이 개별적으로 그려지는 과정에서 상당히 작업하기의 즐거움을 느낀다고 술회한다. 그러다가 그 요소들이 전체로서의 대상 영역이 된다고 의식할 때는 어떤 특정하게 계열화된 결론처럼 수렴되는 현상이 있고, 이 현상을 타개해 보고자 애쓰지만 마치 초자아의 명령처럼 그 타개의 격투 과정 속에서 번번이 지고 만다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는 미술 작업을 시작하던 초창기에 그림 그리는 순수한 즐거움을 만끽했던 것과 달라진 틀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 그 똑같은 과정의 그림 그리는 사건이 지금에 와서는 벗어나려고 애쓰는 하나의 딜레마 혹은 질곡처럼 작용하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는다.

확실히 김현주 작가는 손과 뇌가 결합되어 그림을 그리는 놀이 감각으로부터 시작한 듯한 경쾌한 테크니션의 느낌이 있고, 그 느낌은 여전히 작가가 그린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은연중에 배어난다. 인상주의적 수법으로 빛의 환영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매체특정성이 사라진 포스트미디엄의 시대에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부터 2차원 평면과 3차원 현실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무화하는 현대적 조류에 민감한 것도 아니다. 작가는 어떤 미술사적 맥락 하에서 개념적 혹은 추상적 전략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며, 그저 손과 뇌가 결합하여 그리는 — 더 정확하게는 ‘그려지는’ -- 작업, 인류학적 관점에서 말하면 “어떻게 어떻게 그려지는” 소위 브리꼴라주의 작업에 아직까지 몰두해 있는 것이다. 그러한 흐름의 가장자리에서 문득 문득 “나는 왜 이렇게 그리고 있지?” 라든가 “나는 다르게 그릴 필요가 있지 않은가?” 같은 질문들이 마치 회화와 작가 자신 사이의 거리감을 확보한 차원에서 제기되어야 한다고 어느덧 침입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무서운 몰두, 혹은 그러한 몰두라고 말할 필요도 없는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지대에서 그림 그리는 즐거움의 향유로 지속해왔던 작업이 갑자기 이성적 각성과 개념적 정립을 요구받았다고 할까. 그러나 굳이 그러한 요구에 대응할 필요가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주로 꽃들을, 꽃들의 풍경을, 나아가 꽃들의 곡선적 어우러짐을 통해 이루어지는 홀리스틱한 이미지, 우주적 이미지가 작가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 이미지의 세계를 마주하는 이들에게는 작가의 내면풍경이 외화된 표현으로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꾸만 깔때기 한 지점으로 모여드는 수렴적 회화 방식으로부터 모종의 방어적 태도를 취하면 취할수록 스스로 매너리즘의 증거가 아닌가 근심하고 동시에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온 작풍을 내밀하게 검토하게 되는데, 수용자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과 무관하게 회화 그 자체를 마주하여 그 꽃들의 유동적 이미지를 자주 몽상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작가는 작풍의 검토와 함께 작가적 주제의식에 대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현주 작가의 장점은 그러한 생각과 별개로 탈중심화된 우리 세계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 꽃밭의 동적인 세계에서 작가는 선율적 풍경을 느끼되, 그 풍경이 유동적 카오스로 운행하게 하는 리듬적 주제를 선뜻 제시하지 못했다. 물론이다. 이는 탈중심화된 꽃들의 이미지가 그 자체의 즉물적 에너지에 힘입어 평면 세계에 거대한 증식의 과정처럼 퍼져나가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 많은 평면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작가는 자기 작업의 중요한 꼭지점인 동시에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느끼는 듯했다.

이러한 작가 자신의 브리꼴라주에 가까운 꽃들의 자연증식적인 회화 작업이 얼마나 크고 풍부한 기술적 과정 속에서 즐거움의 향유로 지속되어야 왔는가를 상기시키는 것이 이번 작가와의 대화에서 초점을 두었던 주제였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비롯한 미술의 역사 속지에서 본 기존 회화의 걸작들을 슬쩍 보기만 해도 마치 파리의 오리지날 건축물에 대한 짝퉁을 하루아침에 만들어내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시 건축술처럼 김현주 작가는 그 식물적 증식의 놀라운 힘을 타고났다. 이를 부정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이다.

그리고 이번 2019년 레지던시에서 진행된 작업들, 가령 <Wet Dreams> <꽃 꿈> 등을 위시한 작업들을 대하면, 이미 작가 자신이 꿈 속에서 꿈을 꾸게 되는 이치, 그리고 꽃 속에서 꽃을 피워내는 방법을 서로 교환하면서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그 안에 그 안이 있고, 그 안의 안에 또다른 안이 있다’는 담고 담기는 엎치락뒤치락의 세계, 우리 세계의 속살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꽃들의 곡선이 왜 팔꿈치가 안으로 굽듯이 늘 수렴하는 곳으로만 수렴하고, 구체적인 형상의 꽃들이 전체로서는 마치 파시즘처럼 뭉개져서 합창의 현상으로만 보이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스스로 연마해온 답을 제출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꽃들의 형상은 여전하지만, 그 형상은 개별자의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가운데 그 소리들의 공명으로부터 이루어진다. 또한 꽃 속에 꽃이라는 은유는 꿈의 물질적 느낌을 살려서 몽환적이면서도 절제된 표현으로 조율할 수 있었다. 이럴 때의 표현주의는 꽃잎들이 가진 표면장력을 살리게 하는, 그 장력들이 합쳐져서 더 큰 힘을 받는 일종의 역학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마냥 손과 뇌의 연결 감각이 주는 자족적인 유희가 아니라 어떤 방향 —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같은 질문이 담긴 방향 — 으로 나아가는 개인이자 집단으로서의 이중적 지위를 가진 존재의 물음이 그 표현주의적 언어로 그려질 수 있었다고 할까. 김현주 작가는 과거 무한정한 증식으로 터져나가서 종내에는 멈출 수 없는 현상을 겪던 것과 달리 뛰어난 제어 능력과 절도, 엣지 감각을 회화의 타임아웃을 통해 잘 보여준다.

작가가 대단히 애지중지하는 작업대를 완성한 것처럼 2019년 작품들은 어떤 일관된 사상 하에서 꽃들의 홀리스틱한 이미지를 슬슬 드리블해가고 있으며, 이제 김현주 작가의 작업은 지금부터가 아닌가 한다. 꽃들의 선율적 풍경이 가능하게 하는, 즉 설탕이 물에 녹기 위해서는 휘저을 막대가 필요하다는 그런 관점에서 꽃들의 댄스가 가능케 되는 리듬적 몸체가 그 꽃잎들 사이로 어렴풋이 암시되면 어떨까. 이는 기분좋은 환기이며, 김현주 작가의 꽃우주가 이미 어느만치는 작가적 진실이 담긴 내면풍경의 현시가 꽤 되는 단계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무운을 빈다.

Expressionist Thinking and Bunches of Flowers as Landscapes of Inner Life

 

Nam-soo Kim | Art Critic

 

The central subjects of Hyunju Kim’s paintings are flowering plants, which dominate hidden, dark corners of the world like wetlands and shady forests. Such flora is also arranged entropically in her paintings, which are not keen on showing the incredible liveliness of wild plants. They depict flowers in abundance, yes, but these flowers somehow appear collectively depressed. Kim’s bundles and bushes of flowers seem to point to the chief preoccupation that she struggles with, as well as the potential for transcending the limits set by these concerns.

             There is something abstract about Kim's depictions of flowers. They lack the presence of light conditions that change with time and weather or any location indicators whatsoever; her flowers simply exist in chaotic profusion, as if a proxy for our world as a cosmos. Step closer and the flowers become even blurrier; having lost their outlines, these images transform into a harmony of colors that imbues the overall landscape with something like a melody. Such expressionist tendencies are manifested in Kim’s paintings, as well as her somewhat obsessive attachment to a certain sensibility.

             Kim herself has confessed that she derives great joy from creating discrete lines, colors, and shapes. However, once these disparate elements begin to coalesce into a unified whole, she ends up reaching the same stylistic conclusion. Despite repeatedly trying to avoid this outcome, it seems impossible for Kim to emerge victorious, as if she were held captive by some kind of artistic superego. In fact, she states that the pure joy she once experienced when painting at the start of her career has become more of a dilemma or a trap that she desperately seeks to escape.

             Glimpses of a lighthearted technician can be gleaned from Kim’s early paintings, created at a time when her practice was more playful and her hands and brain worked in perfect synchronicity. She is not intrigued by the quality and effects of light in the way that an impressionist might be, nor is she keen on aligning herself with the post-medium tendencies in contemporary art that neuter the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two-dimensional art and three-dimensional reality. Kim certainly does not seem content to inherit any conceptual or abstract strategy pertaining to a particular school of art; rather, she remains immersed in so-called bricolage, in how something is expressed and painted from an anthropological perspective, with one's hands conveying what the brain has processed. Questions like “Why am I painting this way?” and “Shouldn’t I be doing something different with this painting?” began infiltrating the space that she both intentionally and unintentionally maintains between herself and her works. It is almost as if Kim’s artistic process—once joyful and occupying a happy gray zone between the conscious and subconscious, thanks to her selfless absorption—is now subject to a rational and conceptual awakening. It is ultimately the artist’s obligation, however, to decide whether or not to respond to the demands of that awakening.

             The holistic, pseudo-cosmic images of flowers that populate Kim's landscapes strike viewers, if not the artist herself, as outward expressions of her inner life. The more aware she is of her work converging on a single style or message—and the more defensive she becomes about it—the more she is bound to believe that she has fallen victim to mannerism and thus begin to revisit all her previous works. And yet, viewers are likely unaware of such a complex cognitive process and instead simply delight in the dreamy and fluid images of the artist’s painted flowers.

             Kim herself may be preoccupied with her works’ themes and styles, but the true testament to the strength of her painting practice is the fact that, regardless of her inner conflicts, the works convincingly present viewers with images of the decentralized state of our current world. The dynamic environment of Kim's flowers aptly conveys the melodious landscape she encountered, yet stops short of establishing a theme that would otherwise suffuse the landscape with a rhythm and render it as dynamic chaos. The decentralized flowers seem to unrelentingly propagate through the sheer force of their own energy, perpetually requiring an ever-larger canvas. Such a dramatic necessity for more space seems to have awakened in Kim the impetus for a turning point in her art.

             In a recent interview with the artist, I wanted to remind her of the joy that these proliferating floral bricolages used to give her while simultaneously enriching her technical process. Kim conveys the unstoppable energy of botanical propagation much like the architects of St. Petersburg, who remarkably replicated buildings that they had seen only briefly in Paris. Such an ability is a gift, not just a burden.

             Works like Wet Dreams and Flower Dreams, both produced during her 2019 artist residency, effectively express the illusory nature of a world in which dreams unfold within dreams, flowers blossom within flowers, and dolls keep coming out of matryoshka dolls. Through these works, the artist seems to respond to well-worn questions: Why do the curves of flower petals always point inward? Why do the individual flowers in her paintings end up disappearing behind a fascist harmony? Although the flowers have discrete figures, they inevitably transform into resonating voices that originate from all directions. The metaphor of a flower within a flower is instructive for conveying the sensations of recurring dreams with artistic subtlety; this approach to expressionism can be best understood as a dynamic model in which the surface tension of multiple flowers combines to generate much more tension than the sum of their parts. This expressionist language is not simply meant to serve the self-indulgent act of painting one's thoughts, but also to raise questions (Where do we come from? Where are we going?) among humans who live as both individuals and members of a community. Kim may have struggled to contain her boundless propagating energy in the past, but her recent works attest to the superior control, modesty, and edge she has since cultivated.

             Kim's 2019 works dribble with holistic images of flowers and fill viewers with anticipation that her art will finally begin to take off. When dissolving sugar in tea, one must stir it with a spoon; to transform her melodic landscapes of flowers into a dance, Kim must instill a sense of rhythm into the petals of those flowers. And if Kim’s paintings appear wanting for rhythm, that should be a welcome signal that the flowery cosmos of her paintings has attained a level of refinement capable of expressing her inner life and artistic truth.

회화 너머의 환영

가창창작스튜디오: 김현주

안소연 미술비평가

 

김현주의 회화는 다소 이중적이다. 화려한 색이 캔버스 전면에 가득한데, 이상하게 어둡다. 어떤 형상이 뚜렷하게 보이는가 싶다가도, 물감 더미 속으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검고 굵은 선들이 무언가를 그려내는 것 같은데, 차라리 무언가 있던 것이 거칠게 지워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똑같은 것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같은 것이 아닌 오히려 다름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김현주의 회화는 모호한 이중의식을 드러내면서 화면 너머에 수수께끼 같은 상황들이 깊게 봉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사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꺼내는 화두가 “꿈”이다. 이를테면, 밤마다 되풀이되는 꿈의 한 장면들과 그것을 기억해보려는 현실에서의 집착이 일련의 회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또,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어떤 환영처럼 떠오르는 잠재적인 형상들에 대해서도 그는 관심을 두고 있다. 지난 가창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개인전에서, 김현주는 《꿈이 떠나서 몸이 무거워》(2018)라는 제목으로 모두 열 점의 신작을 소개했다. 전시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김현주는 여기서도 꿈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켰다. 현실의 리얼리티로부터 한쪽 면이 떨어져있는 것 같은 개인의 초현실적 잠재의식으로서의 꿈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불러오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자체가 실패이거나 커다란 모순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주는 실체에 다가갈 수 없는 무의식의 환영과 이미지의 분열적인 징후를 회화로 옮기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그의 회화가 유독 언캐니(uncanny)한 이중의식에 붙들려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어쩌면 그러한 정황들 때문일 거다.

 

김현주의 회화에서 풍기는 언캐니한 정서는, 오래 전 초현실주의자들이 매달렸던 꿈과 무의식에 대한 집착과도 닿아있다. 특히 초현실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탐색했었던, 반수면 상태의 환영과 그때의 모순과 환각에 붙잡혀 있는 이미지들의 분열적 연속을 김현주의 회화에서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다. '무의식(unconsciousness)'과 '실재(the real)'의 연관성을 추적하면서, 꿈이 표상하는 억압과 은폐의 사건들을 강박적으로 되살리려 했던 초현실주의자들의 히스테릭한 시도 또한 김현주의 회화가 환기시키는 관심과 어느 정도 중첩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그림은 자신의 내밀하고 사적인 꿈을 통해 그것이 어떠한 시각적 표상으로 무의식의 영역을 현실에 투사할 수 있을지를 사유하고 탐색하는 일련의 태도를 엿보게 한다. 때문에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다소 분석적이고 또한 이론적인 틀 안에서, 다시 말하면, 이미 규정된 정신분석학적 개념과 결과를 의심 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스스로가 가져다 놓은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그는 그림으로 표현되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적 내면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기 자신의 의식을 돌아보고 의심해봐야 하는 이중의 강박에 놓일 수도 있다.

 

이처럼 수수께끼 같은 심리적 환상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가져온 김현주는, 대개 자신이 반복적으로 꾸던 꿈의 장면들을 기억해내거나 리서치한 이미지 자료 등을 참조해 비현실적이고 분열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왜곡된 인물(들)의 억압되었거나 상실 혹은 멜라콜리아에 빠진 듯한 나약한 모습을 표현했다. 이는 주체의 내부에서 파생된 초현실적인 꿈에 대한 시나리오로 이해되어야 하므로, 어쩌면 회화의 장면에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불확실한 인물들에 작가 자신을 대입해 옮겨 놓는 것도 가능하다. 고정된 주체의 형상이 아닌, 은폐되고 분열되고 심지어 배경과 형상이 구분 없이 뒤엉킨 채 부유하는 불안정한 모습은 김현주의 회화가 함의하는 한 개인의 심리적 표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암시한다. 또한 그는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서 그리기도 하는데, 이는 초현실적인 시공간의 분열적 정체성과 억압된 것의 지속적인 회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지난 개인전 《꿈이 떠나서 몸이 무거워》에서 캔버스 5호 정도 크기의 작은 회화 네 점이 짝을 이루듯 벽에 나란히 걸렸던 장면을 떠올려 본다. <봉긋한 빛>(2018), <Empty Dreams>(2018), <Chick Watercolor>(2018), <White blood>(2018)가 두 줄로 짝을 맞춰 서로 마주 놓여 걸려 있었다. 그 중에서 <Empty Dreams>와 <Chick Watercolor>가 화면 중앙에서 한쪽으로 쏠려 있는 인물 형상 때문에 색만 다른 같은 그림처럼 보였고, 추상적인 느낌의 <봉긋한 빛>과 <White blood> 또한 서로 닮아 있었다. 그런데 김현주는 서로 같은 그림처럼 보이는 이러한 표피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그 주제에 시선을 강하게 모으려는 듯 <Empty Dreams>로 명명했고 또 다른 하나에는 화면의 구조와 물질적인 특성을 강조하면서 <Chick Watercolor>라고 이름 붙였다. 더구나 이렇게 다르게 명명된 그림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이미 <Abandoned Dream>(2017)으로 한 차례 더 제작된 바 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이러한 복제 행위에 대해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 말했는데, 이는 되풀이되는 악몽을 강박적으로 반복함으로써 (그것을 모방하여 그리는) 반복 행위에 대한 당위성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을 그리는 신체의 강박적인 반복 행위는 억압되고 은폐된 것들의 회귀를 바라면서 그 불가능과 상실에 대한 대체물로서 어떤 임의의 형상 혹은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떠올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순간, 어쩌면 다른 추상적인 그림 두 점도 엎드린 인물 형상에서 출발한 다 같은 그림일지도 모른다는 분열적 환영을 극대화시킨다.

 

망막에 각인된 잔상처럼 일시적이고 불확실한 시각적 착시와 환영은 김현주의 회화에서 내내 지속된다. <봉긋한 빛>과 <White blood>는 추상적이긴 하나,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반수면 상태의 오토마틱한 환영들처럼 서서히 익숙한 이미지들이 화면 위로 나타난다. 타오르는/사그라드는 불꽃 같기도 하고 피어나는/시들어가는 꽃 같기도 한 일련의 추상적인 색의 형상들이 애매하게 왜곡되고 변형된 시각적 잔상들을 만들어낸다. 김현주는 시들어가는 꽃을 추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죽음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음을 작업 노트에 적어 두었는데, 애초에 그는 꽃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꽃이 연상시키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중적인 충동을 강박적으로 환기시켜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한 연쇄적인 연상 작용에 의해, 꽃이나 불꽃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색 톤의 추상적인 회화에서 어딘가에 몸을 쭉 편 채 기대어 쓰러져 있는 인물, 그러니까 나란히 걸린 <Empty Dreams>와 <Chick Watercolor> 속 인물의 형상에 각인된 죽음의 이미지가 겹쳐 보인다. 따라서 그의 회화에 직접 드러나 있지 않지만 어떤 꿈의 사건들이 분열적인 몽타주처럼 맞물려 있는 회화 너머의 환영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다.

 

한편, 김현주는 서양미술사 속 명화들을 회화의 소재로 자주 차용해왔다. 특히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와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회화를 많이 참조했는데, 《꿈이 떠나서 몸이 무거워》에서도 벨라스케스를 차용한 작품 두 점이 전시됐다. 한눈에도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시녀들 Las Meninas>(1656-1657)을 떠올릴 수 있는 <Stories of History>(2018)와 <Empty Burden>(2018)은 김현주의 회화에서 보이는 특유의 붓 자국이 매끈한 재현의 효과 보다는 물질성과 추상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는 역사에 기록된 대가들의 작품에서 그 이미지가 함의하고 있는 어떤 리듬을 읽으려 한다. 그것은, 정지되어 있는 회화의 표면 너머에 은폐되어 있는 불확실한 사건의 잠재의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그런 이유에서, 마치 서사 없는 이미지들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김현주의 회화는 꿈에 투영된 현실의 분열적인 단편들처럼 이중적인 환영들로 가득 차 있다.

Phantasms Beyond Paintings

 

Soyeon Ahn | Art Critic


 

Hyunju Kim’s paintings defy easy characterization. Bright colors dominate her canvases, although their overall compositions project a dark ambience. Some objects may be discernible at first glance, but then quickly disappear behind blobs of paint as soon as one takes a closer look; thick black lines seem to represent definite objects, only to vanish along with the forms that used to be there. Although Kim appears to repeatedly paint the same thing, her works collectively reveal just how different they are from each other. Such puzzling and elusive paintings may even lead viewers to suspect that something more mysterious might be concealed behind the canvas.

“Dream” is the most frequently used keyword when describing Kim’s paintings, something which she herself acknowledges. Her obsession with recalling a reoccurring scene from her nightly dreams and actually visualizing it in her painting practice has driven her to produce a series of works. She is also strongly influenced by phantasmagoric images that haunt the border between reality and dreams. In her solo exhibition as an artist-in-residence at Gachang Art Studio, Kim presented ten new paintings under the title As dreams disappear My body becomes heavy (2018), a title which underscored her fixation on dreams. It is somewhat challenging to assign visual reality to dreams that occupy the hidden recesses of one’s surreal subconscious; this task is frustrating and prone to failure because it is self-contradictory. However, such difficulties have not deterred Kim from her relentless efforts to paint the phantasmagorical and fragmented images of the subconscious. Her paintings are universally uncanny almost by definition, since they depict dreamscapes that are inherently impossible to capture through visual language.

             This uncanny sensibility is reminiscent of the surrealists’ fascination with dreams and the subconscious. Fragmented continuums of images that the surrealists actively explored—phantasms encountered while half-asleep, replete with all their contradictions and hallucinatory facets—have also left an imprint on Kim’s paintings. Moreover, traces remain of the surrealists’ hysteric attempts to register the connection between reality and the subconscious, compulsively invoking the repressed and concealed events conjured up by dreams in Kim’s works. Thus, her paintings betray an introspective and pensive attitude through their preoccupation with projecting the subconscious onto the realm of reality. Nevertheless, her profoundly personal attitude seems, rather paradoxically, to conform to accepted theories and concepts germane to psychoanalysis. Kim sets herself the daunting task of questioning her conscious artistic choices, in addition to inspecting her inner life, in order to avoid formulaic pitfalls.

             Inspired by the puzzling nature of psychological illusion, Kim often depicts repressed, lost, feeble, and melancholic subjects against the backdrops of scenes that she has either dreamed or researched. Insofar as one can understand her paintings as scenarios or reenactments of surreal dreams representing Kim’s inner life, the indeterminate human figures she depicts in her paintings can also be understood as representations of herself. These hidden, fragmented, and floating figures that somehow merge with the background serve as compelling surrogates for the artist’s psyche. Kim also paints the same dreamy scene over and over again, as if to satisfy her desire to revisit her own fragmented and repressed identity that resides somewhere in a surreal space-time continuum.

             Examples of this can be found in a set of four small paintings that were displayed in pairs at her exhibition As dreams disappear My body becomes heavy—Puffy Light, Empty Dreams, Chick Watercolor, and White Blood (all 2018). Empty Dreams and Chick Watercolor are nearly identical compositions rendered in different colors, with human figures occupying their center. Puffy Light and White Blood also look very similar in terms of their abstract quality. Notwithstanding the striking correlations between these works, their differing titles—Empty Dreams and Chick Watercolor—emphasize their theme and medium, respectively. As far as I know, Kim also adopted this tactic in the painting Abandoned Dream (2017). She attributes this self-replication to her insistence on repetition, justifying it as the helpless act of an obsessive-compulsive person who is desperate to revisit her recurring nightmares. The physical side of this compulsion informs her search for an image or figure capable of replacing the loss of something repressed and hidden that can never return. Kim’s compulsion also makes it seem as if the other two abstract paintings were also inspired by the same dream as the one she depicted with a human figure pictured lying face down.

             Fleeting, uncertain illusions and phantasms operate as principal elements of Kim’s paintings. Half-asleep, automaton-like phantasms seem to materialize when one gazes intently into abstract works like Puffy Light and White Blood. The succession of abstract shapes and colors that resemble both rising and dying embers as well as blooming and withering flowers continue to conjure distorted afterimages. Kim has written in her journal that her abstractions based on withering flowers reflect a desire to express the process of death. In other words, while looking at flowers she felt also compelled to manifest the contradictory impulses toward life and death that they evoke. The series of images that derive from these abstract paintings, along with their ember/flower red palette, naturally connect with the human figure at the center of Empty Dreams and Chick Watercolor, a figure who seems to be death personified. The fragmented montage of these dream events is what lurks within Kim’s paintings.

             Famous works by Old Masters like Velázquez and Delacroix supply Kim with other motifs for her paintings. As dreams disappear My body becomes heavy included two works that strongly resonate with Velázquez: Stories of History (2018) instantly recalls Las Meninas (1656/1657), while Empty Burden (2018) highlights the way in which Kim's signature brush strokes manifest both the physical and abstract qualities of her subjects, rather than creating truthful representations thereof. In her attempts to adhere to the rhythms implied by well-known paintings, perhaps Kim seeks to explore the uncertain subconscious concealed beneath the surfaces of such masterworks. Thus, Kim’s paintings of endlessly repeating narrative-less images remain haunted by ambiguous phantasms extracted from dreamscapes.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번역되었습니다.

Korean-English Translation of this manuscript is supported by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and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